벨기에에서 온 컴퓨터공학도는 기술이라는 단 하나의 렌즈로 공개시장과 사모시장의 경계를 지웠다.
필립 라퐁은 1967년 벨기에에서 태어나 MIT에서 컴퓨터공학을 공부했고, 맥킨지에서 컨설턴트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996년 줄리언 로버트슨의 타이거 매니지먼트에 리서치 애널리스트로 합류해 통신과 기술 섹터를 맡았다. 3년 뒤인 1999년, 낸터킷 섬의 한 해변 이름을 딴 코아투 매니지먼트를 세웠다.
1887년 벼락을 맞고도 살아남은 다트머스의 소나무 한 그루가, 그가 지은 회사의 이름이 되었다.
스티븐 맨델은 1956년에 태어나 다트머스 대학에서 정치학을, 하버드에서 MBA를 마쳤다. 1984년부터 1990년까지 골드만삭스에서 소비재·유통 애널리스트로 일했고, 이후 타이거 매니지먼트에서 소비재 애널리스트를 거쳐 매니징 디렉터에 올랐다. 1997년 로버트슨의 지원을 받아 론파인 캐피털을 설립했다.
노르웨이 해군 특수부대를 지휘하던 사람은, 월가에서 개인의 직감 대신 조직화된 리서치를 무기로 골랐다.
올레 안드레아스 할보르센은 노르웨이 해군사관학교를 나와 노르웨이 특수부대 팀을 이끌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윌리엄스 칼리지에서 1986년 경제학 학위를, 1990년 스탠퍼드에서 MBA를 받았다. 타이거 매니지먼트를 거쳐 1999년 10월 데이비드 오트, 브라이언 올슨과 함께 바이킹 글로벌 인베스터스를 공동 창업했다.
그는 펀드매니저 자리에 앉아 기다리는 대신, 공개서한과 SPAC으로 시장에 직접 걸어 들어갔다.
브래드 거스트너는 앞선 세 사람과 달리 타이거 계보에 속하지 않는다. 그는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 300만 달러로 알티미터 캐피털을 시작했다. 상장기업과 비상장 스타트업을 함께 다루는 구조를 처음부터 택했고, 회사는 이후 약 200억 달러 규모의 자산을 굴리는 곳으로 성장했다.
테리 스미스는 1953년 런던 이스트엔드에서 태어나 카디프대에서 역사학을 최우등으로 마쳤다. 1990년 UBS 필립스앤드드루의 영국 기업 리서치 총괄이 된 그는 1992년 회계 관행을 다룬 책을 펴냈다. 기업들이 이익을 부풀리는 열두 가지 기법을 실명과 함께 열거한 이 책은 10만 부 넘게 팔렸고, 그는 그 대가로 자리에서 밀려났다.
여기서 배울 한 가지 — "좋은 기업 · 적정 가격 · 가만히" 세 줄로 요약되는 투자 원칙.
빌 나이그렌은 미네소타대학에서 회계학을, 위스콘신대학 응용증권분석 과정에서 재무학 석사를 마쳤다. 노스웨스턴뮤추얼의 애널리스트로 출발해 1983년 시카고의 해리스 어소시에이츠에 합류했다. 1990년부터 1998년까지 미국 리서치를 총괄했고, 1996년 오크마크 셀렉트 펀드, 2000년 오크마크 펀드의 운용을 맡았다.
워싱턴 D.C.에서 자란 척 애크리는 아메리칸대학에서 의예과로 출발했다가 영문학으로 전공을 바꿨다. 의대 진학을 접은 뒤 1968년 증권업에 발을 들였고, 첫 직장 존스턴 레먼에서 21년을 머물렀다. 브로커로 시작해 지점과 리서치, 자산운용을 차례로 맡았고, 1989년 자신의 회사 애크리 캐피털 매니지먼트를 세웠다.
2003년 8월부터 2010년 8월까지 키스 마이스터는 아이칸 엔터프라이지스의 최고경영자였고, 이후 부회장을 지냈다. 2004년 출범한 아이칸 파트너스에서는 시니어 매니징디렉터로 일했다. 아이칸의 캠페인을 가장 가까이에서 설계하고 집행한 사람이었다. 2010년 8월 회사를 떠나 그해 12월 코벡스 매니지먼트를 세웠다.
제프 스미스는 소시에테제네랄의 인수합병 부서에서 경력을 시작했다. 이후 라미우스에서 파트너 겸 매니징디렉터로 일하며 2002년 동료와 함께 스타보드 밸류 전략을 시작했다. 금융위기 뒤 라미우스가 코웬 그룹과 합쳐졌고, 2011년 그는 파트너들과 함께 스타보드를 독립시켰다.
2000년, 스물넷의 메이슨 모핏은 막 출범한 밸류액트 캐피털에 애널리스트로 합류했다. 이후 한 번도 회사를 떠나지 않았고, 창업자 제프 우벤이 물러난 뒤 회사를 이끌게 됐다. 헤지펀드에서는 보기 드문 내부 승계였다. 밸류액트는 20년 넘게 기업 지배구조 한 가지에 집중해온 곳이었다.
냉동식품 트럭을 몰던 청년은, 훗날 미국 최대 소비재 기업들의 이사회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됐다.
1942년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넬슨 펠츠는 와튼스쿨을 중퇴하고 1963년 가업으로 돌아갔다. 아버지의 냉동식품 유통회사에서 뉴욕 시내로 트럭을 몰았고, 형과 함께 경영에 뛰어들어 회사를 크게 키웠다. 1972년 한 식품회사와의 합병 과정에서 평생의 동업자 피터 메이를 만났다.
손정의는 1957년 일본 사가현 도스에서 재일한국인 가정에 태어났다. 10대에 미국으로 건너가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에서 경제학을 공부했고, 학생 시절 만든 전자 번역기를 샤프에 팔아 사업 밑천을 마련했다. 1981년 스물넷의 나이에 소프트뱅크를 세웠는데, 당시에는 소프트웨어를 유통하고 컴퓨터 서적을 펴내는 작은 회사였다.
국민연금기금은 1988년 국민연금 제도가 시작되면서 함께 설치됐다. 개인이 홀로 감당하기 어려운 노후 소득을 사회 전체가 나눠 준비한다는 것이 설계의 출발점이었다. 가입자가 늘고 보험료가 쌓이면서 적립금은 1600조 원을 넘어섰고, 규모만으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연기금이 됐다.
여기서 배울 한 가지 — 내 노후자금이 어디에 담겨 있는지 확인하는 창구로 보면 가장 정확합니다. 따라 살 종목을 찾는 목록이 아닙니다.
켄 피셔는 1950년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필립 피셔는 성장주 투자의 고전을 쓴 이름난 투자자였지만, 아들은 아버지의 방법을 그대로 물려받지 않았다. 1979년 그는 250달러를 밑천으로 자기 이름을 건 자산운용사를 세웠고, 이후 수십 년에 걸쳐 회사를 수천억 달러 규모로 키웠다.